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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후대에 전하는 가치, 대승한지마을
작성일 : 2021-08-03 조회수 : 200
한지 장인을 만나다 - 3편

한지는 가장 전통적인 소재인 동시에 가장 창의적이고 새로운 소재입니다.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 살아 숨 쉬며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매개로서 한지를 조망하고자 특별 기획 콘텐츠를 마련했습니다. 한지를 창의적으로 재해석, 재창조하는 창작자들의 이야기와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의 문화를 지켜 나가는 전국의 한지 공방 19곳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한지문화산업센터 소식지 제1호에서는 4곳 공방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고궁한지 / 대성한지 / 대승한지마을 / 덕치전통한지 / 문경전통한지 / 성일한지 / 신풍한지 / 신현세전통한지 / 안동한지 / 용인한지 / 원주전통한지 / 원주한지 / 이상옥전통한지 / 장지방 / 전주전통한지원 / 천양피앤비 / 천일한지 / 청송전통한지 / 청웅전통한지
 

후대에 전하는 가치, 대승한지마을

대승한지마을이 위치한 전북 완주는 예로부터 고려지의 원산지였습니다. 고려지의 전통을 계승하고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2010년에 조성한 것이 바로 대승한지마을이죠. 한옥 스테이와 한지 제조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이곳에서 김한섭 장인은 한지 체험을 돕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종이를 뜨던 이른바 ‘통꾼’이었던 그가 어떻게 한지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게 됐을까요?
 

©최형락

어떻게 한지 만드는 일에 뛰어드셨나요?
창호지의 발상지는 이곳 완주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러다 보니 어릴 적부터 종이 뜨는 모습은 많이 봤죠. 군 제대를 하고 1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영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그때만 해도 면 서기나 경찰 계통은 생활하기 어려웠어요. 한지는 도급제로 하므로 그들의 3배를 벌었죠. 당시에는 종이 뜨는 일이 꽤 수입이 됐어요. 워낙 어려운 시기였기에 처음에는 돈 버는 재미로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오랜 기간 여러 한지 공방을 옮기며 일을 한 것으로 압니다.
저 같은 사람을 예전에는 통꾼이라고 불렀어요. 진주, 천양제지, 괴산… 안 가본 데가 없었죠. 종이 좀 뜬다고 하면 요샛말로 서로 스카우트하려고 난리였거든요(웃음). 천양제지에서는 한 10년 정도 있었는데 거기서 나와 2~3년 준비하고 대승한지마을을 조성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대승한지영동조합법인 대표로 있으면서 일종의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어요.

 

©최형락

여러 공방을 누빈 이력이 있는 만큼 한지를 만드는 최적의 환경에 대해서도 잘 아시겠어요.
일단 산수가 좋아야 해요. 공기가 좋고 먼지도 없어야 하죠. 한지는 자연 건조를 하잖아요. 지금은 건조실에서 하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기계는커녕 연탄도 없을 때였으니까. 얼마나 좋은 물을 사용하느냐, 기르는 닥의 질이 얼마나 좋냐 등이 좋은 한지를 만드는 조건입니다. 물론 초지공의 기술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죠.

대승한지마을을 조성한 데에는 고려지의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목적이 큰 것으로 압니다. 고려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견 오백 지 천년(絹 五百 紙 千年)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단은 500년을 가고 한지는 1000년을 간다는 뜻이죠. 고려지는 변색도 심하지 않고 잘 부서지지도 않아요. 지금은 화학약품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원래 고려지는 콩대, 볏대를 태웠을 때 나오는 재 40kg에 피닥 150g을 삶아서 만들었죠.

 

©최형락

대승한지마을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 중입니다.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찾나요?
초, 중, 고교생, 대학생이나 일반인도 많아요. 여름 방학 때 많이 오고, 가을이나 봄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그들에게 한지의 가치를 전할 때 보람을 느껴요. 종이를 뜬지 48년 차입니다. 평생을 한지에 바쳤죠. 이제는 돈 때문이 아니라 저를 찾아오는 소비자들을 보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한번은 목포에 사는 한 고객이 “붓을 대려니 아까워서 못 쓰겠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웃음). 이렇게 호평을 받을 때 ‘내 기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죠.

요즘은 팬데믹 상황 떄문에 체험 프로그램에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체험 인원에 제한을 두고 있어요. 원래는 회당 40~70명까지 참여시켰는데 요즘에는 15명 정도만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한지가 있나요?
글쎄요. 사실 꼭 만들고 싶은 종이가 몇 개 있는데 여기서 공개하기는 어렵네요(웃음). 이미 연구까지 다 마치고 실험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여러 사정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어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종이를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최형락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복은길 18 (우편번호 55346)
전화 | 063) 242-1001

 

* 이 인터뷰는 한지문화산업센터가 2019년 19개 한지 공방을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발췌·재구성한 것입니다. (진행 : 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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