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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지의 가능성을 고심하다, 장지방
작성일 : 2021-12-01 조회수 : 432
한지 장인을 만나다 - 14편

한지문화산업센터는 한지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잇고 있는 전국의 한지 공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지를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19개 공방의 역사와 철학, 특징 등을 하나하나 짚고 있죠. 그 세 번째 순서로 용인한지, 원주전통한지, 원주한지, 이상옥전통한지, 장지방 등 총 5개 공방을 소개합니다.

 
고궁한지 / 대성한지 / 대승한지마을 / 덕치전통한지 / 문경전통한지 / 성일한지 / 신풍한지 / 신현세전통한지 / 안동한지 / 용인한지 / 원주전통한지 / 원주한지 / 이상옥전통한지 장지방 / 전주전통한지원 / 천양피앤비 / 천일한지 / 청송전통한지 / 청웅전통한지
 

한지의 가능성을 고심하다, 장지방

 
장지방은 일찍이 한지체험학습을 시도하는 등 한지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한 공방입니다. 동시대에 걸맞게 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한 것이죠. 하지만 한지 생산 과정은 고집스럽게 전통 방식을 고수합니다. 장용훈 대표는 인터뷰 중 한지 생산을 이을 20대가 없다며 걱정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근심 역시 한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자부심이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지방은 직인(심벌)이 재미있네요.
한지문화산업센터에서 제작해준 직인은 사실 원본이 있어요. 한 베네수엘라 출신 작가가 저희 공방에 보름 정도 머물려 종이 뜨는 것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 어머니, 저, 그리고 동생을 그림으로 그려 선물해 줬거든요. 결국 장씨 집안 사람들이 운영하는 공방이니까 이만한 직인도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가평에 자리 잡았지만, 원래 집안은 전주 쪽이라고 들었어요.
원래는 전남 장성 쪽이에요. 아버지 때 경기도로 올라왔는데 재료 수급 영향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닥나무가 지리산 자락에서 많이 났는데 거기서 나오는 백닥이 줄면서 할아버지 대부터 여기(가평)서 내려다 쓰곤 했어요. 그러다 아예 여기서 작업장을 차리는 게 낫겠다 싶어 1979년경에 정착을 했죠. 당시만 해도 월급제와 도급제가 있었어요. 통 하나에 자기가 뜨는 종이 장 수대로 수익을 올렸는데 스무 명 이상이 일할 때도 있었죠. 어지간한 중소기업 하나 규모였던 셈입니다. 저도 어릴 적부터 집안 일을 도왔는데 종이 떼 주는 일부터 시작했죠. 조금 크면서 원료 삶을 때 불을 떼거나 나무를 옮겨 주는 일도 했고요.


 

©최형락

아버지인 고 장용훈 지장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였고 대표님도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죠. 이것도 상당히 독특한 이력 같아요.
크게 국가기관에서 관리하는 중요무형문화재가 있었고, 시도무형문화재가 있어요. 나라에서 관리하느냐 시 혹은 도에서 관리하느냐의 차이일뿐 기술적 차이가 크지는 않아요. 국가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우리 지역의 특징이 있는 문화가 있다면 지정할 수 있는 것이죠.
 
인사동에 있는 장지방 매장은 예전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곳은 저희 공방의 홍보관 겸 판매 매장입니다. 서울에서는 딱 그곳에서만 판매하죠. 거기 있는데. 지금 전주지업사나, 저희가 거래하던 데가 세 군데인데, 전주, 문화, 백제예요. 이렇게 딱 해야지, 여기 저기 줄 수는 없어요. 사람을 아무리 많이 쓴다 해도 한계가 있죠.

장지방은 일찍이 일본에 종이를 수출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거래량이 많지 않지만, 제가 시작할 때는 일본에 꽤 많은 수량을 수출했어요. 그때는 작은 사이즈의 순지 한 품목만 취급했는데 생산한 종이 전량이 나갔습니다. 외발지보다 쌍발지를 많이 가져갔던 기억이 있는데 품질의 차이나 화지와의 유사성 때문은 아니었고, 경제적인 이유가 컸던 것 같습니다.


 

©최형락

외발지와 쌍발지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음, 굳이 차이를 말한다면, 외발지보다 쌍발지가 더 예쁘게 떠진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원료로 떴을 때 외발지가 좀 더 남성적인 면이 있어요. 조직 자체가. 무엇이 더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죠. 외발지도 외발지 나름대로 거친 맛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좋아하는 수요층도 분명 있고요.
 
요즘에는 어떤 종이가 많이 나가나요?
요즘은 민화가 붐이예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데 아무래도 종교색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특정 종교에 색깔은 덜하면서 전통적 방식으로 그리는 민화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민화지에 대한 수요가 생겨났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국을 찾아와 그림을 배우고 가기도 합니다.
 
민화뿐 아니라 종이 뜨는 것을 배우겠다고 해외에서 오는 경우도 있죠?
네. 보통 해외에서는 한 달 코스로 들어오곤 해요. 겨울에 재료가 나기 때문에 주로 겨울에 공방을 찾죠. 나무 베고, 잿물 내리고, 삶고. 저희 쪽으로는 미국인들 많이 왔어요. 지금 페이퍼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에밀리 리도 저희 공방을 거쳐 갔죠.


 

©최형락

공방들이 클래스를 열거나 체험학습을 하는 것도 결국 현실적인 이유겠죠?
그렇죠. 아마 체험학습 같은 경우 장지방이 거의 처음 시도했을 거예요.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운영하지 않게 됐지만. 전통한지를 만들고 있지만, 노력에 비해 이문이 적은 게 사실입니다. 부족한 이윤을 보완하기 위해 체험학습 같은 것을 운영하는 것이죠. 그나마 수익을 내는 게 있다면 가공 쪽이죠. 저희도 마찬가지지만, 한지문화산업센터도 이런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바로바로 반응이 오는 게 아니잖아요. 반응이 와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냐? 그 이전에 한지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주소ㅣ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작은매골길 70 (우편번호 12449)
전화ㅣ 031) 581-0457 / 서울 인사동 매장 02)723-0457


* 이 인터뷰는 한지문화산업센터가 2019년 19개 한지 공방을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발췌·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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