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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한지는 과정이다, 신현세전통한지
작성일 : 2021-10-05 조회수 : 53
한지 장인을 만나다 - 8편

한지문화산업센터는 한지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잇고 있는 전국의 한지 공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지를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19개 공방의 역사와 철학, 특징 등을 하나하나 짚고 있죠. 그 두 번째 순서로 문경전통한지, 성일한지, 신풍한지, 신현세전통한지, 안동한지 등 총 5개 공방을 소개합니다.
 
고궁한지 / 대성한지 / 대승한지마을 / 덕치전통한지 / 문경전통한지 / 성일한지 / 신풍한지 / 신현세전통한지 / 안동한지 / 용인한지 / 원주전통한지 / 원주한지 / 이상옥전통한지 / 장지방 / 전주전통한지원 / 천양피앤비 / 천일한지 / 청송전통한지 / 청웅전통한지
 

한지는 과정이다, 신현세전통한지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값싼 종이가 물밀듯이 들어오는 요즘입니다. 한지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죠. 하지만 신현세전통한지 신현세 대표는 말합니다. 진짜 우리 한지의 강점은 정성이 깃든 과정과 공법에 있다고 말이죠.
 

종이는 주로 누가 사가요?
기록원에서 많이 가져가요. 박물관 같은 곳에서 두꺼운 합지를 구매해가죠. 기록원에서는 주로 옛 종이를 복원한다고 사가고요.

한지 뜰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세요?
고객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 두께이고 중량이고 맞춰서 뜨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물론 제작 과정이 쉽지 않고 시간도 더 걸리지만.

신현세전통한지는 이곳만의 비법을 갖고 있겠죠?
그럼요. 다만 우리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처럼 소셜 미디어에 홍보하고 이런 거 잘 못 하잖아요? 전통문화의 명맥이 잘 보존되고 유지되었던 시기 자체가 1940~1970년대인데 그때 왕성하게 활동하던 한지 제작자들이 이 시절에 능수능란하게 홍보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잖아요? 우리 종이에 자부심이 있지만 충분히 알리지 못하는 것은 다소 아쉽죠.

 

©최형락

대표님은 언제부터 한지를 만드셨나요?
제가 1947년생인데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 고향 신반에서 처음 배웠죠.신반은 예전부터 장판지나 창호지 생산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에 이 지역은 집집마다 한지를 만들었습니다. 한창 때는 80호~100호 정도 됐을 거예요. 사실 종이 잘 뜨는 사람은 지금도 많아요. 힘들어서 안 하는 것뿐이죠. 

공방을 만들기 전에는 어디에서 일했나요?
전국 곳곳을 돌며 종이를 만들었어요. 원주나 전주 쪽에서는 일하지 않았지만, 강원도, 경상북도, 영주, 안동…. 마지막으로 6년 반 정도는 한솔 제지에 있었고요.

 

©최형락

참, 신현세전통한지가 자리한 봉수면에는 전국 유일의 한지 전설이 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1000년 전 고려 시대 때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 국사봉 중턱에 대동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해요. 그곳의 주지 ‘설(薛)’씨가 어느 봄날 닥나무 껍질을 흐르는 냇물에 담가 두었더니 껍질이 물에 풀리면서 삼베 올처럼 섬유질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를 손으로 주물러서 바위 위에 건져 놓았더니 종이와 같은 물체가 만들어져, 이것을 발전시켜 한지를 만들었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우리 한지가 중국이나 동남아 종이에 비해 훌륭한 점은 무엇일까요?
글쎄. 어떤 이들은 닥에서 장점을 찾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진짜 차별화되는 것은 기법, 공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테면 우리는 닥무지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재료 공정이 전혀 다르죠. 삶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고요.

 

©최형락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봉수면 청계로 42 (우편번호 52111)
전화 | 055) 573-5901
 

* 이 인터뷰는 한지문화산업센터가 2019년 19개 한지 공방을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발췌·재구성한 것입니다. (진행 : 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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