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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역사를 지키는 공방, 문경전통한지
작성일 : 2021-10-05 조회수 : 50
한지 장인을 만나다 - 5편

한지문화산업센터는 한지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잇고 있는 전국의 한지 공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지를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19개 공방의 역사와 철학, 특징 등을 하나하나 짚고 있죠. 그 두 번째 순서로 문경전통한지, 성일한지, 신풍한지, 신현세전통한지, 안동한지 등 총 5개 공방을 소개합니다.
 
고궁한지 / 대성한지 / 대승한지마을 / 덕치전통한지 / 문경전통한지 / 성일한지 / 신풍한지 / 신현세전통한지 / 안동한지 / 용인한지 / 원주전통한지 / 원주한지 / 이상옥전통한지 / 장지방 / 전주전통한지원 / 천양피앤비 / 천일한지 / 청송전통한지 / 청웅전통한지
 

역사를 지키는 공방, 문경전통한지

“우리 역사를 지키는 사투라고 생각합니다.”
문경전통한지 김춘호 대표의 이 말이 뇌리에 깊이 남았습니다. 아버지 김상식 장인과 함께 공방과 전통 한지를 지키고 있는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죠. 실리를 떠나 대를 이어 고집스럽게 우리 것을 계승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김삼식 선생님은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김삼식
처음 한지를 접한 건 9살 즈음이었습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의 징용 피해자였어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누님 집에 들어가 생활했는데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려면 일을 해야 했죠. 참 어려운 시기였으니까. 원래 전통 한지는 겨울에 만드는 것이지, 여름에는 만들기 어려워요. 겨울에는 한지 일을 돕고 여름에는 농사 일을 돕거나 했죠. 진짜 이쪽에 뜻이 생긴 건 15살 무렵이었고 본격적으로 종이를 뜬 건 17살이었어요.

자형의 형님으로부터 처음 일을 배웠다고 들었어요.
김삼식
그렇죠. 그때 벌써 여러 한지 제조장은 화공약품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화공약품도 돈이 있어야 구하죠. 저희는 산에 가서 풀을 해다가 말총 갖고 엮어서 발을 만들고, 발틀은 끌로 파서 틀 위에 얹어 사용하고 뭐 이런 식으로 약품을 쓰지 않고 종이를 만들었어요. 십 원 한푼 안들이고 발품만 팔아 만들었던 것이죠. 그렇게 일을 배웠다 보니 독립을 한 이후에도 약품을 쓰지 않고 전통 방식을 유지하게 됐죠.
 


©최형락

화공약품 없이 종이를 만들려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이 방식을 고집한 이유가 있나요?
김삼식
약품을 쓰면 한지에 힘이 떨어지거든요. 물론 표백이 되어 하얗게 나오긴 하지만. 저도 25살 즈음에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당시만 해도 문경과 예천이 유명한 닥나무 생산지였거든요. 그래서 닥을 싣고 이곳저곳 판매를 하러 다녔어요. 그때 많은 곳에서 화공약품을 쓰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따라갈까?’ 싶었어요. 하지만 왠지 내키지가 않더군요. 만약 그때 마음을 바꿨다면 돈은 더 많이 벌었겠지만, 그렇게 되면 전통 한지의 맥 하나가 여기서 끝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도 ‘한지를 지키고 살았다’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이곳(내서리)에 터를 잡으셨던 건가요?
김춘호
그건 아닙니다. 아버지는 원래 농암면 갈동이라는 곳에서 일을 배우셨어요. 내서리(현 속리길)에 터를 잡은 건 1960년대 초였습니다. 본래 한지를 생산하는 곳은 언제나 물이 풍부해야 하는데 공방 바로 옆에 속리산 자락으로부터 물이 흘러오는 도랑이 하나 있어 생산에 최적화된 곳이죠.

 
©최형락

처음 아드님(김춘호 대표)이 가업을 잇는다고 했을 때 선생님 기분이 어떠셨나요?
김삼식 아들이 제대하고 얼마 안 있어서 불쑥 “아버지, 저 종이 할래요”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만류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고된 지 아니까 ‘장사라는 게 그냥 보는 것과 다르다’라고 말했죠. 그런데도 꼭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김춘호 사실 저는 6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왔어요. 불 때고 종이 떼고…. 그런데 전국을 둘러봐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한지를 만드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꼭 이 일을 해야겠다 싶었죠.
김삼식 그렇다고 바로 승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장사 기술을 배우고 오라고 했죠. 이곳저곳에서 직장생활을 했는데 사실 제 속 뜻은 이 길을 걷지 말하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와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더군요. 그래서 결국 승낙을 하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최형락

한지 만드는 이야기를 좀 더 해보죠. 주로 잿물 원료로는 무엇을 쓰나요?
김춘호
콩대, 고춧대, 메밀대…. 원래 잿물 월료로는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농작물로 하는 거거든요. 만약 평창 쪽에서 한지를 만들었다면 메밀대를 많이 썼겠죠. 이 지역에서는 콩과 고추가 많이 나서 콩대와 고추대를 쓰는 것입니다. 고추는 겨울이 되면 서리를 맡아 죽는데 그렇게 되면 잿물이 나오지를 않아요. 그래서 10월 중하순즈음에 잘라내서 재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 다음에는 닥나무를 베죠.

 


©최형락
 
최상품 닥만 쓴다고 들었어요.
김춘호
닥나무는 원래 1년생을 쓰는 게 좋아요. 물론 묵히면 묵힐수록 껍질이 두꺼워지기 때문에 훨씬 많은 양의 종이를 만들 수 있지만 품질이 떨어지죠. 예전에 저희도 업체에서 오래 묵힌 닥을 사서 만들어 볼까도 싶었는데 막상 받아보니 도저히 못 쓰겠더군요. ‘아, 나는 평생 닥 긁고 살아야 하는 피곤한 팔자인가 보다’ 싶었죠(웃음). 그것들과 저희 닥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훨씬 정돈된 느낌이죠.

아버지처럼 잿물을 고집하고 계시죠?
김춘호
화공약품을 쓰는 게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탄산나트륨은 화학적으로 안정화가 되어 있고 증해가 잘되요. 그런데 그렇게 모두가 화학품을 써버리면 전통 잿물을 써서 만드는 종이는 누가 만드나요? 저희는 이게 우리 역사를 지키는 사투라고 생각합니다.

 

©최형락

주소 |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속리길 40 (우편번호 37003)
전화 | 054) 571-2848
 

* 이 인터뷰는 한지문화산업센터가 2019년 19개 한지 공방을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발췌·재구성한 것입니다. (진행 : 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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